너는 짐승해라. 난 사람할꺼다.

‘체벌’에 대한 이야기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폭력을 통해 굴복을 강요하는 부조리. 그 부조리를 옹호하는 순간 체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상식과 몰상식이라는 당연한 상식이 학교라는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인정받을 수 있냐는 문제는 쉽지 않지만 쉬운 문제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관계가 더이상 존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인정하자.

멀쩡한 청년이 군대에서 가서 총기 난사로 살인마가 될 때,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도 있겠지만 난 멀쩡한 청년을 악마로 만들어버린 군대라는 공간이 무서웠다. 학교과 군대. 교묘하게 닮아있는 것이 두 사회 모두 선임과 후임, 교사와 선생이라는 계층을 가를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군대에서의 벌어지는 폭력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상당히 비슷한 이유는 권위의 유지를 위해서 오랜 기간동안 폭력이 묵인을 넘어 정당화되 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학생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교권에 대한 문제의 답을 학생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때리지 않으면 수업을 할 수가 없기 적당히는 때려도 된다는 허술한 생각들이 ‘채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정당성을 가져다는 우리의 마음이다. 근데 미안하지만 진정한 교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지금의 교단의 문제는 공교육 시스템의 붕괴에 그 원인이 있다. 시스템의 붕괴를 학생에 대한 폭력을 잡을 수 있을까? 임시방편이다. 그동안 폭력이 부족해서 교권에 대한 조롱이 계속되 왔다고 생각하나? 교사들의 처절한 반성도 없고 체별이라는 수단을 빼앗아갔다고 투덜거리는 그들을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존중해줘야 하나? 조폭은 돈을 상납받지 존중을 받지는 못한다.

우리들 마음 속에 말이 안통하면 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낀거는 자신은 말이 통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부터 좀 때렸으면 좋겠다. 말 안통하니 다커서 저따위 소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지.

체벌에 대한 대안은 체벌을 하지 않는거다. 체벌을 하지 않으면 교실이 질서가 잡히냐고 묻는다면 그걸 왜 나한테 따지냐랴고 묻고 싶다. 50명 정도의 학생들을 상대로 아무도 안듣는 수업을 진행할 능력이 없으면 학교 관둬야지 안그런가? 말이니 쉽지라고 묻는다면 그래서 선생은 아무나 하면 안되는거다라고 답하고 싶다.

난 짐승처럼 학교 다닐 때 맞은 기억으로 아직도 희희덕 거리기는 하지만 좋은 추억이지 다시 경험하고 싶은 추억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 폭력에 대한 기억은 아직까지 폭력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게 해주어서 고맙기는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사절이다. 선생들은 인간을 때릴 자격이 없다. 그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짐승끼리는 서로 때리고 그러던데 난 사람이라 반대다. 난 사람할꺼다. 아무도 때리지 말아라.